코펜하겐에서 미리 예약하고 간 두 번째 레스토랑은 Amass였다.
노마 출신의 셰프 맷 올랜도(Matt Orlando)가 연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레스토랑이다.
이분은 커리어가 르버나딘(뉴욕), 팻덕(런던), 노마(코펜하겐) 수셰프, Per se(뉴욕), 노마 셰프 드 퀴진이다. 셰프 드 퀴진이면 르네 레드제피가 자리를 비울 때 주방을 총괄하는 자리이니 커리어 면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코펜하겐의 수상버스(배)의 가장 동쪽 종점에서 내리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발전소와 공장들이 있는 코펜하겐의 공업지구다.
이 레스토랑이 아니면 절대 올 일 없는 그런 공간이다.
이런 공장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2, 3층에는 다른 업체들이 들어와있고 0, 1층,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1, 2층이 레스토랑이다.
건물 앞엔 직접 키우는 허브들이 있다.
저 위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한 층 올라가면 이런 대문이 반겨준다.
2층 복도에서 내려다본 다이닝 홀
저 여자그림 앞에 비어있는 두 자리가 우리 자리였다.
자리에 착석 후 바라본 주방과 다이닝홀
주방 위에 대문 같았던 녹색 유리벽이 있다.
6시에 오픈이고 7시에 맞춰 갔는데 손님이 많진 않았다.
조금 더 왼쪽으로 바라본 다이닝홀의 모습
양 벽면을 장식한 그래피티는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누가 뉴욕 브루클린 느낌이 충만한 레스토랑이라 그랬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음악도 잔잔한 하우스 음악이 깔렸고 서버들 복장은 매우 캐주얼했으며 요리를 가져온 셰프나 서버나 화려한 문신을 숨기지 않았다.
테이블에 센터피스 같은건 없고 초 하나와 식기가 들어있는 틴케이스가 있었다.
주방 확대 컷
가끔씩 우렁차게 예스 셰프를 외쳤다.
그리고 물잔이 나왔는데 물잔이 잘토다...
사진을 누르면 커지는데 컵 바닥에 잘 보면 Zalto라고 써있다.
Noma에서도 Geranium에서도 쓰지 않는 잘토를 여기서 만나다니 ㄷㄷㄷ
메뉴는 이렇게 생겼다.
6코스에 650dkk, 9코스에 850dkk라서 9코스를 주문했다.
첫 요리는 Cod head, Charred Chilies, Cucumber, Burnt lemon
채소에 싼 대구 볼살 요리다.
이 식당은 산미를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야채를 숙성/발효시켰다.
쌈요리에 고추가 들어간 것이 쌈장 같아서 반가웠다.
얇은 유리로 만들어진 물잔
빵을 발라먹는 홈메이드 페스토 소스
케일, 여러 허브, 그리고 올리브오일로 만들었다.
이 곳이 감자빵 맛집이란 소리를 듣게 만든 그 빵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한달 이상 숙성된 반죽을 굽기 시작한다.
그 숙성 과정에서 발효가 되면서 감자빵인데도 신맛이 느껴진다.
Tea Pickled Savoy Cabbage, Nut ‘Ricotta,’ Black Garlic
샐러드라 할 수 있는 야채요리가 다음 순서로 나왔다.
땅콩으로 만든 리코타 치즈랑 흑마늘의 고소함과 강렬한 향을 차에 절인 배추가 잘 감싸준다.
리코타 치즈는 무적인 것 같다.
어제 갔던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있는 도시인 Humlebaek 지역의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맥주도 잘토 잔에 준다 ㄷㄷㄷ
3가지 종류의 덴마크 맥주를 팔고 있었는데 하나 추천해달라 했더니
식사 초반인 만큼 산뜻한 페일에일을 줬다.
스칸디나비아 근처에서 잡힌 참치 숙성회 요리
위에 칩같은 것은 버섯칩이고 노란 것은 아주 살짝 익힌 계란 노른자이다.
노른자는 무슨 젤리 같았다.
버섯 칩으로 향과 식감을 잡고 노른자로 간을 했다.
요리 이름이 호박 그 자체다.
호박, 호박 껍질 가루, 호박 오일, 발효호박잼으로 이루어진 요리다.
호박에서 단맛과 신맛을 뽑아내고 껍질로 고소한 향을 더했다.
Beetroot, Quince, Horseradish, Black pepper
위에 왠 거품만 보여서 뭐지 했는데 비트 요리였다.
비트도 새콤함을 품고 있다.
Horseradish는 겨자 혹은 와사비를 만드는 식물이다.
맵진 않았고 박하같은 상쾌한 향이 났다.
Wild Goose, Smoked apple, Celery root, Pickled Mugwort
사냥꾼이 총으로 잡은 야생거위 요리다.
확실히 오리보다 쫄깃쫄깃하고 조직이 치밀하다.
아래 소스는 갈색 버터 오일로 만들었다.
오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이라고는 듣고 갔는데 거의 모든 요리의 피니쉬가 오일이었다.
다만 기름진 오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신맛이 대부분 오일 출신이었다.
싱가폴에서 사슴요리를 먹었을 때도 사이드에 사과가 나왔었다.
야생동물이랑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보다.
훈제사과는 정말 달았다. 제주도에서는 귤도 구워먹는다는데 과일을 익히면 수분이 날아가 달달해지는 것 같다.
메인까지 먹고 보니 다이닝홀이 거의 다 찼다.
첫 디저트인 당근요리
곶감 만드는 방식으로 만든 당근요리다.
뿌려진 재료들은 기억이 안난다. 다만 오직 당근에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고 말리고 쪄서 저걸 만들어냈다는 설명만 기억난다.
당근 자체의 단맛을 끌어올려서 매우 달달한데 당연하게도 당근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난 당근케익도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다보니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좋아했다.
Sweet potato, Woodruff, Blackcurrant
고구마 아이스크림에 우드러프라는 허브향을 넣은 상큼한 크림을 두르고 주스로도 만나봤던 블랙커런트를 얼려서 올렸다.
위에 칩은 고구마를 까고 남은 껍질을 모아서 만든 크래커 같은 칩이다.
매우 맛있었다.
이쯤 되니 블랙커런트의 신맛이 안섞여 있었으면 심심했을 것 같다.
유기농 마쉬멜로와 태운 커피 드립찌꺼기
마쉬멜로가 뭔가 약했다.
유기농이라 그런지 건강에 안좋을 것 같은 단맛이 나야 하는 마쉬멜로가 은은하게 달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커피빵
이게 대 히트였다.
살짝 단 맛에 커피향이 은은하게 났다.
역시 빵맛집...
너무 맛있어서 한 개 더 포장해달라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먹었는데 식어도 맛있었다.
바깥쪽을 보며 먹을 수 있는 바 자리도 있다.
테이블이 만석일 때 워크인 손님을 받는 공간이다.
키친은 다이닝홀 옆에 있는 것이 전부다.
작지만 나름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철저하게 재료 낭비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1주일에 한번씩 냉장고를 비롯한 보관중인 재료를 모조리 꺼내서 재분류하고 다시 넣거나 먹어 없앤다고 한다.
2층에는 와이너리와 단체를 위한 다이닝룸, 그리고 숙성실이 있었다.
이건 공급받은 야생 거위를 숙성하는 공간
그 바로 옆으로는 30살 먹은 늙은 소를 숙성시키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 숙성된 소를 메인으로 했었는데 그때 남은 소 지방을 이번 소 겉면에 발랐다고 한다.
일단 최소 5~6개월을 숙성할 예정이고 정확히 언제쯤 먹을 수 있을지는 자기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파인다이닝 답게 별도의 바 공간도 있었다.
2층에 보이는 사무공간은 마치 클럽의 디제잉 공간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음악을 저기서 튼다고 한다.
공장에 있던 엘리베이터를 0층에 고정해 코트 체크로 만들었다.
코트 체크 앞에 이렇게 꽃병으로 분리된 공간이 있다.
차를 마시거나 일찍 왔을 때 일행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떠나는 길에 포장 부탁한 커피빵과 함께 호박칩을 선물로 줬다.
저 포장비닐은 옥수수로 만들었고 칩은 호박요리를 하고 남은 호박의 모든 부분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발효된 호박도 첨가했는지 신맛이 살짝 돌아서 먹는데 심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