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점심엔 예전부터 미리 시간을 부킹해놓은 영채를 만나러 신촌으로 갔다. 아마 이 휴가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놓지 않았다면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때 이대앞과 신촌에 자주 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도 정말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2012년 초 이후로 신촌엔 처음 가는 느낌이었다.
신촌역에서 연대앞까지 원래 왕복 4차선이었다는데 2차선으로 줄이고 차없는 거리를 만들어버렸다. 가끔 버스 정도는 지나다닌다고 한다. 확실히 복잡함은 줄어들었다. 이 날 점심즈음엔 이미 먹고 싶은 것들은 다 먹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메뉴를 미리 고민하지 않았다. 돈까스 전문점 이끼가 문득 생각나서 한 번 검색해봤는데 이미 없어진지 꽤 되었다길래 그냥 생각을 멈추고 연대 재학생한테 선택을 맡겨 버렸다. 그래서 간게 복성각인데 옛날에 이 동네서 놀 땐 가끔씩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점심이 아니었다면 한국식 중화요리도 한 번 못먹고 홍콩 돌아갈 뻔 했다.
돌아가는 길에 여길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역시 무지앤콘이 제일 귀엽다
귀엽당
귀여워
사실 무지앤콘 피규어를 정말 사고 싶어서 마지막 고민을 하러 찾아갔던 곳인데(향후 코엑스에 갈 일이 없었다) 결국 잘 참아내고 다음을 기약했다. 확실히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사소한 지출에 무감각해진 것이 느껴지지만 카카오프랜즈 아이템들은 사소한 가격이 아니었다.
집 돌아가는 길에 갤러리아!
갤러리아 명품관 지하에 좋은 푸드코트가 있는데 마마스, 바토스, 부자피자를 비롯한 여러 핫한 음식점들이 많다. 이번 휴가에 바토스를 못 간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홍콩에 먹을만한 멕시칸 음식점은 있어서 우선순위가 밀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저녁 약속 전 시간을 쪼개 들른 송은아트스페이스
입장료 안받는 미술관인데 가끔씩 쏠쏠한 전시들을 한다. 특히 2011년에 했던 피노컬렉션 특별전은 정말 감명 깊게 봤다. 외박 나온 군인 신분으로 두 번이나 보러 갔었다.
반대쪽에서 본 모습
송은미술대상 특별전을 진행중이다.
미술관 1층에 식당이 있는데 애매한 시간에 갔더니 스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요리사들이 브레이크 타임에 먹는 밥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ㅋㅋㅋㅋ 이 장면을 보니 뉴욕의 휘트니박물관 생각이 났다. 그 곳 지하의 식당은 엄청 유명한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어떤 작가의 무슨 제목의 작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굳이 검색해서 찾아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 감상만 적고 지나갈 것이다.
전시관 2층과 3층에 걸쳐 있는 작품
내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방 안을 둘러볼 수 있게 되어있는데 나는 거미줄 같이 엉켜있는 빨간 실 때문인지 작가의 뇌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 방 안에 책상 위에는 얇은 종이에 인쇄된 책이 있었고 그 위엔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가벼운 이미지의 오브제를 좋아하는 작가라 그랬는데 그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같은 작가가 한쪽 벽에 색연필로 그려놓고 간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
이건 나름의 방법으로 빛을 표현한 것 같다. 아무래도 빛 보다 가벼운 것은 없으니까
두 번째 작가의 호텔 파라다이스
모텔을 전시장 안에 옮겨 놓았다. 이 작가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그런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은밀한 공간은 아무래도 모텔이 아닐까? 파라다이스라 부를만큼 행복한 공간임과 동시에 어느 곳 보다 폐쇄적이고 은밀한 공간이라는 모순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모텔이 현대 사회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이미 언급했듯이 공간을 좋아하는 이 작가는 이번엔 세 가지 공간을 한 작품에 모아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도대체 뭘 표현하고 싶었는지 몰라서 도슨트에게 설명을 들었다. 맨 위의 에펠탑 조각 같은 부분은 사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농성을 벌였던 송전탑이다. 그 아래 노란 구조물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의 셋방을 그대로 옮겨왔다. 맨 아래 빨간 타워는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렇게 회화를 하는 작가도 있었다.
아트스페이스 마당에 있는 하트
송은아트스페이스를 나와 집까지 걸어갔다. 갤러리아에서 청담사거리까지 명품 매장들이 줄줄이 있는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길에 보다보니 별로 특별해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가격표를 보면 다시 특별해보이겠지. 오후 시간에 걸으니 나무가 너무 불쌍했다.
이 날 저녁엔 2-3모임과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있었다. 2-3모임에서 저녁으로 맛있는 회와 해물찜을 먹고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가서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토요일 점심엔 삼촌네 집에서 외가 4촌들 모임을 했다. 회+닭강정+소고기를 먹음. 삼촌 아들이 04년생인데 핵귀요미다.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불과 2년전만해도 이렇게 작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애들은 정말 빠르게 큰다.
이것 저것 먹으며 와인도 마시고 가요대전 재방송도 보고 Wii로 놀다보니 다음 약속시간이 되어 압구정으로 향했다. 스탠포드 친구들 몇 명을 보기로 했는데 하버드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가보고 싶다며 방문한 왕자장어에서 이미 오늘은 풀예약이라고 까이고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왕자장어는 나중에 검색해 봤더니 매우 유명한 집이었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
닭갈비 역시 해외에서 먹기 힘들다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근처 이자까야에서 술을 마시다가 11시쯤 설곽인의 밤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후기는 이미 썼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이 날 역시 3시 넘어 집에 갔다.
수육에 소주 개굳
다음날 아침엔 짐을 싸서 공항터미널에서 부치고 노트북을 보러 갔다. 아빠가 집에서 쓸 새 노트북을 사야한다고 해서 삼성전자 매장에 갔는데 연말이다보니 꽤 싼 딜이 많았다. 어짜피 집에서 부모님이 쓰는거 게임이나 복잡한 연산하는 프로그램 쓸 일이 없을테니 가장 싼 모델로도 스펙이 차고 넘쳤다.
그렇게 노트북을 정하고 엄마가 점심에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저녁은 집에서 엄마밥 먹기로 했었다) 이미 휴가 내내 잘 먹어왔기 때문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흘려보내기엔 한국에 올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과 1~2분만에 냉면이 생각났다. 함흥식이든 평양식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냉면은 제대로 만들기가 정말 힘든 음식이라 그런지 외국에서 만족스러운 냉면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한 때 냉면이 어떻게 11000원이나 하냐고 매스컴에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는데 난 만오천원짜리 파스타보다 만들기도 어렵고 맛있는 음식인데 까이는 것이 뭔가 불쌍했었다. 하지만 비싸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나의 선택을 들은 아빠는 바로 근처 평양냉면집으로 향했다.
1인분이 정말 많다.
꽤 유명한 집인가보다.
난 냉면 매니아 급은 아니라서 무슨 3대냉면집 같은거 찾아다니진 않는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냉면집이면 다 맛있다.
휴가 일기는 이렇게 끝이다. 이 뒤로는 별거 안했다.
트랜스퍼 손님이 많아서 게이트에서 비즈니스 업그레이드를 받았는데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창가석에 앉았다. 이 비즈니스 업그레이드가 내게 준 것 중 최고는 좋은 기내식이나 와인, 넓은 앞뒤 간격보다 밤비행기를 타면 볼 수 있는 멋진 야경이었다.
이런 사진 찍을 땐 정말 좋은 카메라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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