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1.

Automatically Slow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사치품을 하나 질렀다.
그동안 구매한 비싼 물건은 카메라 하나와 겨울용 코트 하나가 있는데 카메라는 워낙 실용적이라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안든다. 여행이든 맛집이든 인물이든 다 마음에 들게 담아준다. 물론 기기의 한계를 느끼는 중이긴 하다. 코트는 벌써 두 번의 겨울 동안 내내 입어서 깔끔하고 튼튼한 것으로 잘 샀다고 생각한다. 한 세 달 후에 또 입기 시작할듯.

아래 보이는 시계를 구매했다. Slow라는 브랜드의 작은 시계 제작사인데 처음 제품을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바늘 한 개로 한 바퀴에 24시간을 담은 이 시계의 철학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갖고 싶었지만 쿼츠 시계를 사고 싶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 브랜드에서 기계식 오토 시계를 선보여서 며칠 고민하다가 주문했다.


어딜가나 시계가 달려있고 정확한 시간이 궁금할 땐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이 시대에 손목시계는 일부 직종에 근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악세사리 그 이상의 가치를 갖기 힘들다. - 나에게는 사치품에 해당한다 - 사치품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아무래도 화려하면서 쓸모가 없어야 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오차도 낭낭하고 내버려두면 멈춰버리는 기계식 시계다.



택배가 도착해서 포장을 뜯어보니 이런 가죽 케이스가 나왔다. 생각보다 큰데 향후 시계 보관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열어보니 품질 보증서와 설명서가 들어있고 시계가 들어있는 부분에 덮개가 있었다.


시계가 들어가는 부분을 대충 만들었는지 용두가 걸려서 제대로 못들어간다. 케이스를 디자인 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나중에 DIY로 저 부분을 파내볼까 생각중이다. 딱 맞는 8각형 케이스를 잃고 싶지 않다.


소가죽 밴드에 악어가죽 무늬를 새겼다. 시계 테두리와 큰 눈금, 용두에 로즈골드를 입혀서 화려함을 더했다. 날짜 눈금은 1~31이 차례로 돌아가는 방식이고, 시간 눈금은 맨 위에 정오가, 맨 아래에 자정이 위치한다. 정오에 태양에 머리위에 뜨기 때문에 저렇게 설정했다고 한다.


밴드 안쪽이 저런 색인 부분은 마음에 안든다. 뭔가 마감이 아쉬운 부분이다. 시스루 무브먼트는 역시 아름답다. 케이스가 큰 편이라 여백이 많은 느낌이지만 Slow 브랜드 로고와 스위스 메이드, 그리고 일렬번호로 알차게 채워두었다. 100개 한정판매 물량 중 23번째 시계가 나에게 왔다. 가죽밴드는 원래 소모품이고 더운 나라에서 쓰다보면 땀 때문에 더 빨리 망가지는데 밴드를 하나 추가할까 고민중이다. 아무래도 메탈밴드가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홍콩에서 차기 좋을 것 같은데...


손목이 얇은 편이라 시계 케이스가 손목을 가득 채운다. 다음 시계는 40mm 아래로 사야겠다. 다음 목표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있는 기계식 시계인데 가격이 하늘을 찌르다보니 과연 언제 손에 넣게 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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