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

휴가 첫 날 일기

사이판에서 혼자 레드아이를 타고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6시반에 내려 7시에 리무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이적 콘서트를 볼 예정이었고 그 전까지는 일정이 아예 비어있었다. 지난 겨울에 처음 길게 한국에 나오면서 매 끼니 일정을 미리 잡고 왔더니 정작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돌아간 느낌이라 이번엔 거의 계획이 없는 상태로 왔다. 출근시간이랑 겹쳐서 집에 도착하니 8시 45분 정도 되었고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학동사거리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노트북은 1년에 한번은 뜯어서 청소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정기적으로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있고 핸드폰 충전단자도 고쳐야했다.
안타깝게도 충전단자는 미국에서 판매된 기종이라 공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못 고쳤다. 슬프지만 노트북만 청소하고 아침을 먹으러 도산공원 앞으로 갔다. 도산공원 둘레를 따라 고급 음식점이 많이 있는데 그 중 신세계에서 하는 베키아에누보는 고급 델리이자 까페다. 어떤 친구가 매우 맛있다고 하여 아침을 해결할 장소로 선택했다.
치킨시저랩
랍스터테일
원래 커피도 마실 계획이었는데 공정무역커피 임을 엄청나게 자랑하고 있지만 소매가는 결코 공정하지 않아 패스했다. 치킨시저랩은 맛있다. 샐러드도 주는 줄 몰랐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저런 랩의 핵심은 야채와 드레싱과 치킨의 비율인데 굉장히 적당하게 잘 만들었다. 랍스터테일은 패스트리 안에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있는 초코소라빵의 고급버전인데 적당히 달고 바삭바삭했다. 아침에 가서 그런듯.
아침밥을 먹으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점심을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고등학교 선배가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바로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약속 없으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는데 매우 흔쾌히 받아주었다. 직접적으로 연락한지 꽤나 오래 되었는데 이렇게 잘 받아주어서 고마웠다. 12시쯤 회사로 오라 하여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자리를 옮겼다. 베키아에누보엔 애들 학교보낸 청담동 며느리룩을 한 여성분들이 끊임 없이 들어오더니 브런치 메뉴를 두 세개씩 시켜놓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세상 모든 것들을 대신 걱정하기 시작했다. 음식도 다 먹었고 더 이상 혼자 앉아 청승떨고 있으면 자리가 부족한 것을 발견한 새로운 어머니 그룹이 정중히 꺼지라고 부탁할것만 같았다. 그래서 발걸음도 가볍게 도산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랜만에 마조앤새디 까페로 향했다.
마조새디까페
입구
안타깝게도 청담점은 이제 곧 닫고 홍대점을 본점화시킨다고 한다. 하긴 이 땅값 비싼 곳에 단독건물 전체를 까페로만 쓰기엔 수지 타산이 안맞았겠지. 더 이상 거주용으로도 쓰지 않고.




지를 뻔 했으나 지르지 않았다. 곧 닫을 가게라 별로 관리를 안하는 느낌. 최소한의 운영만 하고 있다.
점심을 먹은 곳은 도산공원 앞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보나세라이다. 요새 TV 출연 좀 한다는 샘킴이 이끄는 파인다이닝이고 신선한 식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거두는 작물을 많이 쓴다고 한다. 식당에 도착하니 입구 옆 작은 라운지같은 공간에서 차를 권한다. 파인다이닝들 중에 바를 같이 운영하면서 식전에 술 한잔 하면서 (손님이 도착해야 만드는) 테이블이 준비될 때 까지 기다리는 곳들이 있는데 그것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유기농으로 재배된 차를 한잔 하자 자리로 안내해줬다. 얻어먹는 입장이고 복장도 그냥 그렇고 해서 사진을 매우 제한적으로 찍었다.
아뮤즈부쉬
아뮤즈부쉬는 깔끔했다. 한입요리 네가지. 맨 오른쪽은 먹물에 절인 문어다.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오징어 양배추 롤
개인적으로 쌈채소중에 양배추를 가장 좋아한다. 약간 심심했다. 후추를 뿌려먹고 싶었다.
사진이 없어서 잊을 뻔 했는데 식전빵을 종이봉지에 담아 자가제 소스와 함께 준다. 이 빵이 엄청나게 맛있다. 갓 구워온 따끈함이 느껴져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좀 더 배고픈 상태에서 왔으면 빵만 세 번쯤 리필해서 먹었을텐데 맛있는 빵을 양껏 먹지 못해 아쉬웠다.
냉이스프
냉이된장국의 냉이향이 난다. 당연한데 신기하다. 이 레스토랑이 표방하는 자연주의 식재료와 잘 어울리는 메뉴.
크림소스 해산물 링귀니
해산물이 짱이기 때문에 해산물을 골랐다. 링귀니처럼 넓적한 면으로 만든 파스타를 별로 안좋아해서 조심스레 스파게티면으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넓지 않다고 안심시켜줬다. 다행히 정말 별로 안넓적했다. 
돼지삼겹살구이
이렇게 생긴 삼겹살 요리는 중국식 동파육이 짱인 것 같다. 뭔가 중식당이니까 지방 부분도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는 느낌이 들어서? ㅋㅋㅋㅋ 바삭한 껍질 부분과 살코기 부분을 잘 골라내서 먹었다. 부드럽게 잘 익었고 소스도 맛있고 위에 올려져 있는 파도 맛있었다. 이런 레스토랑에서는 소고기를 잘 선택 안하게된다. 뭔가 스테이크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기 때문인듯.
난 디저트로 티라미수를 먹었다. 타르트나 케익 보다는 크림에 가까운 이 친구가 이미 부른 배에 더 잘 들어갈 것 같았다.
형이 저기 샘킴 지나간다고 알려줬는데 난 누군지 몰라서 큰 감흥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갑작스럽게 점심을 먹자 했는데 이렇게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어서 매우 행복했다. 사실 도착했을 때 어디가고 싶은지 물어온다면 그 근처 현대정육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랑 이런 저런 메뉴들 시켜서 먹자그러려 했는데 점심 먹기로 하자마자 예약까지 해놓으셨다. 고마운만큼 다음에 보답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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