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옆 옛 공간사옥에 생긴 다이닝 인 스페이스에 드디어 가봤다. 요즘 다시 핫해지고 있는 삼청동, 서촌, 인사동 쪽 초입에 안국역 근처에 바로 있다. 나는 원래 혜화에서 서울대 병원을 통과해서 창경궁이랑 창덕궁을 구경하고 안국쪽으로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그 두 고궁은 무려 월요일에 닫는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미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니까 그냥 돌담길을 따라 안국역까지 걸어갔다. 그러다보니 해가 지기 전에 일찍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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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뮤지엄이 된 공간 사옥 |
일찍 도착했으니 오랜만에 인사동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의외로 같은 안국역이지만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냥 서촌 초입 조금만 둘러보다 말았다. 그곳의 한글 간판들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다.
공간 사옥의 왼쪽은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쓰이고 있고 우측의 유리 건물 전체를 식당으로 만들었다. 커튼을 치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5층이 내가 갔던 다이닝 in space이다. 프렌치를 기본으로 한 쉐프의 코스가 고정메뉴이고 점심 코스는 따로 있다. 그 아래로는 일본식 타파스집, 까페, 베이커리 등이 있고 1층의 한옥 in space는 빙수 같은 것을 파는 디저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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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한옥 in 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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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리 옆 뷰 |
해가 지기 약 30분 전 쯤 도착해서 아직은 밝은 창경궁을 볼 수 있었다. 서울의 궁궐은 야간개장을 하는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밤에 조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녁 7시 이후에 예약을 한다면 창경궁쪽 말고 반대쪽 자리가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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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세팅 |
솔직히 1회용 물수건 주는 것은 황당했다. 식전빵은 따뜻하고 고소했는데 아주 특별하진 않았는지 사진이 없다. 우리를 서빙해준 서버님은 초보인지 뭔가 국어책 읽는 듯한 요리 설명을 보여주셨다.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음식을 가져와서 내려놓고는 대화가 끊길 때 까지 설명을 안해주고 한 발 물러나 서계셨는데 이런 스타일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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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비트, 꽃잎, 식초 |
봄에 어울리는 아뮤즈부쉬. 딸기와 비트를 식초 드레싱과 함께 내왔다. 식용 꽃잎과 붉은 빛 일색에 포인트를 주기 위한 채썬 초록 채소까지 매우 잘 어울린다. 앞으로의 코스를 보면 딱히 샐러드랄게 나오지 않는데 그걸 보완하기 위한 구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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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드한 전복, 전복 내장 소스, 브로콜리 |
전복이 야채 아래 숨어있어서 한 조각 잘라 먹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곳 쉐프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리하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저온에서 오랜 시간 천천히 익힌 전복 구이와 전복 내장 소스는 정말 부드럽고 쫄깃 쫄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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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부터 비스크 소스, 타르트, 양파, 토마토, 스캘럽, 허브 |
뭔가 샌드위치 느낌이 나는 구성인데 바삭한 타르트에 양파, 토마토까지 있어서 단 맛이 강했다. 이 친구가 에피타이저 중 가장 재료 면에서 임팩트가 약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런 특이한 구성을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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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에 싼 랍스타와 푸아그라, 송이버섯 슬라이스 |
저 가루도 어떤 버섯 가루였다. 일단 내가 쌈채소들 중 가장 좋아하는 양배추가 나왔고 혼자 디쉬를 장악하고 싶었을 랍스타와 푸아그라가 함께 나와서 그 풍부한 맛에 입이 즐거웠던 요리이다. 탱글탱글한 랍스타와 부드러운 푸아그라의 조화가 사기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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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둑어둑 |
세 가지 에피타이저가 끝나면 메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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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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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토마토 퓨레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조엘로부숑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초록색 친구보다 고소한 맛이 더 강해서 튀지 않는 느낌이다. 농어는 저온에서 오랜 시간 익힌 뒤 팬프라이를 해 껍질 부분만 더 익혔다. 맛있다.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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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제 칼! |
고기가 나올 차례가 되어 아는 칼이 나왔다. 칼 자루가 저 모양이면 프랑스제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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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채끝등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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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와 비트를 곁들임 |
고기는 완벽한 미디움레어. 역시 저온에서 조리한 뒤 양 면만 팬프라이 해서 식감을 살렸다. 그래서 속이 골고루 익었고 위 아래로 고기의 식감을 살려주는 층이 생겼다. 저 길다란 야채도 브로콜리다. 긴 브로콜리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빨간색이 아닌 비트가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고기엔 소금이 뿌려져 있는데 재료와 조리에 자신이 있으니 이런 단순한 직구같은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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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용 실버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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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샤베트, 산딸기 |
샤베트를 메인 앞에 내느냐 뒤에 내느냐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은데 난 딱히 선호하는 것은 없고 쉐프의 선택을 존중한다. 완전 신 맛 제대로 나는 샤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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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거품, 우유아이스크림, 엔젤헤어 |
서버가 세 가지를 함께 먹으라고 설명해준 디저트. 위의 우유거품은 정말 라떼에 올리는 그런 거품이고 우유 아이스크림은 중앙에 헤이즐넛 크림을 조금 품고 있다. 확실히 이런 자가제 아이스크림은 얼음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다. 그리고 부족한 단맛을 설탕으로 만든 엔젤헤어가 보충해준다. 그리고 헤이즐넛 크림은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굳어져 중간 쯤 먹으면 헤이즐넛 초콜렛이 박힌 아이스크림이 등장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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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카롱, 카라멜, 누가, 초콜렛 |
마지막 쁘띠푸르와 커피. 마카롱은 별로다. 마카롱은 제대로 된 놈들을 많이 먹어봐서 그런지 겉이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머랭이 아니면 그냥 과자를 먹은 느낌이다. 나머지는 평범한 맛. 카라멜처럼 이 사이에 끼기 쉬운 것이 마지막에 나온 것은 별로다.
우리 옆자리는 끝내 오지 않아 멋진 뷰를 마음 놓고 감상하고 촬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해가 완전히 지면 확실히 저쪽 자리가 좋은 뷰를 보여준다. 이 레스토랑은 확실히 코너자리가 진리다.
대신 내 자리에선 빌딩 사이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올라갈 땐 엘리베이터로 갔는데 내려올 땐 계단을 걸으며 건물을 구경했다.
언젠가 메뉴가 많이 바뀌면 또 올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