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를 앞둔 2010년 정도만 해도 나는 현대미술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내 미술적 소양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중학생 시절 주입식으로 매운 인상파, 고전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사실주의, 계몽주의 뭐 이런 의미를 유추하기 힘든 낱말들과 르누아르, 모네, 드가, 피카소, 칸딘스키 뭐 이런 누구나 이름은 알 법한 작가들과 대표작 하나 정도 본 기억이 있는 수준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아직 현대미술 = 추상화라는 어이없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고 아래 작품 같은 '와 점 하나 찍어 놓고 저게 작품? 나도 하겠네' 정도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2010년 이야기 와중에 2011년 작품이지만 뭐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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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종이에 수채, 2011, 이우환 |
그랬던 내가 가장 처음 현대미술에 크게 노출된 때가 2011년 하반기 어느 외박나온 주말이었다. 내가 미술에 관심을 좀 갖길 원하던 엄마의 권유로 리움을 방문했고 상설전과 특별전의 도슨트 투어를 들었다. 당시 리움 특별전은 조선화원대전이었기 때문에 뭔가 따분했다. 고미술의 경우 아름다움은 느껴져도 작품의 메세지가 와닿지 않기에 나의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상설전에서 접한 작품들은 뭐랄까 정말 울림을 갖고 있었다. 몇 개만 보고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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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 종이에 수묵, 1988, 서세옥 |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들 중에는 이우환, 백남준, 이수근 같이 익히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보다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제목을 보기 전부터 이미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날 도슨트 선생님은 현대미술을 설명할 때 많은 작품에서 확장성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였다. 점점 흐려지는 그림은 정말 좌우, 그리고 저 뒤로도 수 많은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추상화된 사람은 몸의 구성이 같아도 누구하나 동일하지 않아 개성이 있고 강렬한 먹선이 주는 운동감에 적절한 여백의 미까지 있으니 한국 현대미술 작품으로 소개되기에 좋다.
근데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내가 살면서 봐온 군중은 힘 없는 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려하는 것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속 사람들이 무언가에 저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군무라는 흥겨운 제목은 시위의 이미지에 덮혀 버렸다. 참고서를 통해 시를 이해하는게 어리석은 짓이듯 현대미술을 이해함에 있어 남의 설명은 부차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동무하고 응원하기 좋아하는 고대생이라면 나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작품이 나에게 대화를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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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있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1968, 프란시스 베이컨 |
이 작품도 그날 봤다. 아마 아직도 리움에 한 벽면을 지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작품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데 나에겐 참 와닿지 않았다. 지금 기준 미술품 경매가 1위 작품이 베이컨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통을 표현한 저 얼굴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가보다. 세상엔 돈 많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리움에 갈 때마다 보다보니 소파에 누워 몸을 뒤틀며 광기어린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이 남자가 불쌍해보였고 그림 속에서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후에야 작가가 말하고자 했다던 고립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이 조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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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묶은 달걀>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 제프 쿤스 |
그리고 이 날 처음 제프쿤스의 작품을 접했다. 딱딱한 강철로 가벼움을 표현한 그의 셀레브레이션 작품 라인 중 리움에 꽤 오래 있었던 이 달걀은 보다보면 정말 갖고 싶단 생각이 든다. 보기만 해도 갖고 싶은 이 작품이 현대인의 화려함에 대한 욕망을 담았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말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 한 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자연 채광의 힘인지 눈에 계속 들어왔고 갈 때마다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결국 예술가가 한건 디자인과 시도일 뿐이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게 예술인가? 비싼 명품백이 결국 대량생산된 제품의 일부일 뿐 이 계란도 똑같이 생산해버리면 그래도 가치있는 예술품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었다. 이 의문은 나아아아중에 제프쿤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면서 어느정도 해결 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남겨두고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
다음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이 날 그의 작품도 하나 봤는데 그 작품도 본 순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데미안 허스트가 좋아진 것은 다른 전시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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