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3.

내가 유학을 오기까지

어느새 5년 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잊을 수 없는 그 날들을 되새기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배경은 2007년.

4월, 중간고사 3일차쯤 되던 날 야간자습시간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연히 왜 축하를 하는지 알았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복도로 나가 컴퓨터를 켰다. 제 48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로 선발되었다. 급하게 여기저기 연락 돌리고 축하를 받느라 기분이 들떠서 공부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중간고사 성적이 그대로 기말고사 성적이 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집중이 안되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가족들이랑 파크뷰에서 식사할 때 쯤 되서야 실감이 났다. 아 내가 IMO 대표라니.

그 후엔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기말고사를 안보니 학교 수업도 귀에 안들어오고 빨리 집중교육에 들어갈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국가대표가 된 것으로 어느정도 원하는 곳 아무데나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니 부모님은 당연히 의대를 권했고 나도 수긍했다. 그렇게 IMO에 나가기 직전까지도 나는 서울대 의대에 갈 줄 알았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권했고 집중교육을 하면서 화학 심층을 다닐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의대 문턱에 발을 올려놨던 내가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어찌보면 충동적이었다. 베트남에서 귀국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나 유학가고 싶어."
그리고 그 때 이후로 단 한번도 다시 의대 갈 것을 권하지 않은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난 베트남에서 뭘 보고 느꼈던 걸까?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미국팀 애들 때문이었을까? 원래 내 뜻이 아니었던 의대가 별로 맘에 안들었나? 의대가 재미 없어 보였던 것은 확실하다. 수학 공부하는 것이 막연히 좋았던 것이 컸나보다. 아님 더 큰 물에서 노는 것을 원했을 수도 있다.

사실 아빠가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가라고 다 꼬셔놨는데 유학을 가고 싶다네."
그 문장 앞과 뒤는 못 들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떤 맥락으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 그 2007년 여름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유학에 대한 뜻을 피력한 이후의 유학준비는 일사천리였다. 엄마는 지금의 나를 키운 사람이다. 정말 빠르게 학원도 알아보고 나 처럼 국가대표를 하고 유학을 간 선배들의 어머님들과 연락을 했다. 결국 학원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원서 작업도 학원에서 도와주기로 했지만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기에 여유로운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8월에 귀국한 이후로 12월 원서 마감일까지 정말 길었던 하반기는 수학 올림피아드 공부를 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정말 힘들었다.

모든 것은 영어점수 따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토플, sat, sat2 이렇게 세 시험점수가 아무래도 필요했는데 사실상 시험을 볼 수 있는 달은 10, 11, 12월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 같다. 12월에 마감인데 10월에 SAT2를 보고 11, 12월에 SAT를 봤다니... 심지어 SAT2는 일본 가서 보고왔다. 그때 삼촌이랑 함께 다녀왔는데 그 1박 2일은 아직도 정말 선명하다. 어디서 뭘 했고 뭘 먹었는지도 기억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내 친구 중 한 명도 나처럼 일본에서 시험을 봤는데 갈 때 올 때 모두 공항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걔는 나보다 훨씬 일찍 준비를 시작했을 것 같은데 어쩌다 일본까지 오게되었는지... 여튼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10, 11, 12월 중 뒤의 두 달에 모두 SAT를 보기로 결정한 것은 내 미천한 영어실력 탓이 컸다. 처음 모의시험을 봤을 때 리딩이랑 라이팅 모두 절반도 못 맞았다. 거의 때려칠려 했는데 그땐 그냥 오기로 버틴 것 같다. 아이대표니까 2천점만 넘기면 갈만큼 가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도 크게 작용했다. 물론 2천점 넘는게 쉽진 않았다.

이 외에는 딱히 특별한 기억은 없다. 토플을 4번 정도 본 것 같고 절대 안오르는 스피킹 점수에 좌절했었다. SAT 라이팅 12점 받았다. 그렇게 시험점수가 다 모이고 원서를 잘 냈고 추천서도 내가 다 써서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지원도 안해준 고등학교가 원망스러운데 그 땐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혼자 모든 것을 처리했다. 추천서를 내가 쓰고 교정받고 내가 번역해서 내가 보내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물론 해피엔딩이다. 원하던 학교들 중 한 곳에 붙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들 중 하나는 내가 IMO에 나가기까지가 될 것이다. 요즘 내가 가야할 길을 정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지만 그만큼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미화되었지만 더 미화되어 추억으로 남기 전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겠다.

2012. 11. 4.

[퍼온 글] 당연한 것을 계속 당연하게 하는 힘

원글: 서인석 (설곽 13기)

수학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중 하나가 "당연하다" 이다. (그런데 우리학과 모교수님이 쓴 선대책에는 이상하게 저 표현이 자주 들어가는게 이상하다. -_-;; ) 아무튼, 앞으로 수학과목 듣는분은 시험지에 "당연하다" 란 표현은 가급적 쓰지 말자. "당연하다" 대신 수학에서는 "자명하다" 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자명하다는 것은 곧 너무 사소해서 증명할 필요 없다는 뜻인 반면 당연하다는 것은 뭔가 논리적 갭이 느껴지는 것일까?

세상에는 당연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얼마전까지 삼성화재가 프로배구 우승을 하는 것은 당연했었다. 임요환이 장진남을 이기는 것도 당연하고 맨날 전교1등만 하던 모범생이 수능도 잘봐서 서울의대에 가는것도 당연하다.

이런 것들은 밖에서 보기엔 당연할지 모르나 당사자들 에게는 분명 당연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화재가 우승하는게 당연하다고 해서 삼성선수들은 맨날 당연히 자기네가 우승할 거란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을까? 임요환은 장진남 상대로 겜할때는 연습도 안하고 와서 대충 했을까? 모범생은 서울의대 갈것을 당연히 여기고 수능준비를 발로 했을까?

이런 당연한 것들은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피나는 노력이 그 뒤에 있어 당연해 지는것이다. 오늘도 시험결과에서 1등을 한 학생을 보며 또 당연히 1등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받아넘기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왜 1등을 했는지 종종 잊게 된다. 반면 1등을 해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학생은 "당연해야 되는 1등" 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에 더욱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아무도 삼성화재의 우승을 축하해 주기는 커녕 쟤네 떄문에 배구판이 안커진다고 우려를 해도 삼성화재는 우승을 위해 뼈를 깎는 연습을 해야 했다.

삼성화재가 결승전에서 진날, 당연한 것이 더이상 당연해 지지 않게 되는 그날이 찾아온 것이다. 그 배경에는 현대선수들의 와신상담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은 이처럼 지키기 힘든 것이며 계속 도전을 받고 지켜내는 자리이다. 그러나 그것을 두 걸음 밖에서 보면 한낱 "당연한 것"에 불과하며 그의 고뇌와 노력은 잊게 된다.

오늘도 주변에서 보는 시험마다 상위권을 유지하며 학점을 4.2를 넘나드는 사람의 시험1등, 볼때마다 이기는 프로게이머의 승리, 맨날 잘한다는 얘기만 들어오던 엄마친구 아들의 성공을 당연하다고 넘기는 것은 아닌가.

임요환이 최가람에게 져서 8강에 탈락했을 때,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임요환이 최가람에게 이기는 것은 소위 "당연한 것" 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오기만 하면 완벽하게 틀어막아 줄 때는 아무도 별 관심을 안가지던 오승환이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자 수많은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기사가 난 것은 왜였을까?

오늘도 수많은 "아직 당연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 경의를 표한다.

2012. 11. 3.

멘토링 1

Ph.D.는 학부 공부와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굉장히 많이 다르다.
학부 수준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있지만 대학원에 가면 좋든 싫든 엄청난 Tool들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활용하면 더 의미있는 질문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수학만 공부 하더라도 econ Ph.D.를 할 수 있다.
MS&E에도 내가 관심이 있을만한 분야가 있을 수 있다.

연구를 해보거나 연구 보조를 해보거나 Ph.D.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라.
필드에서도 학계로 올 수 있고 학계에서도 필드로 언제나 갈 수 있다.
교수를 컨택하거나 대학원생을 컨택해라.

Econometrics란 모델링을 통해 실제 현상을 분석하고 대입하고 더 나은 모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Grad school 과목들을 들어봐라. 그 세계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직은 좋아하는 것을 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나랑 잘 맞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여름에 그냥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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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 school 과목 들어보기
MS&E 탐색
관심분야 / 여름 리서치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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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everything is up to me.
더불어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 고생을 하는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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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
진짜?

Salesforce.com 회의 통역을 마치고

세일즈포스는 통역 알바 제의를 받고 나서 검색을 해보고서야 처음으로 무슨 회사인지를 알았다. 요즘 가장 핫이슈인 혁신을 몸소 실천하는 회사들 중 하나였다.

같이 방문하신 분들 중 클라우드 관련 컨설팅을 하시는 분이 공학, 특히 컴퓨터를 잘 배워놓으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 옛날에 CS로 대학원을 가시고 미국에서 일하다가 한국에서 관련 컨설팅을 하고 계신다. 아무래도 미래는 모바일+가전기기 들의 첨단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을 묶어주는 것이 클라우드일텐데 관련 공부를 해 두는 것이 어떤 전공을 하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회사가 세워진지 얼마 안된 스타트업이고 규모가 이미 포츈지에 오르내릴 정도인데다가 여러 방면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니. 물론 내가 전혀 관심 없던 분야기도 하지만 역시 세상이 넓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경험, 넓은 인관관계 뭐 이런 늘 중요하다고 하는 것들이 왜 중요한지 제대로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