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3.

부모님과 눈물

지금까지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눈물이 있다. 동계 올림픽에서 자신의 무대를 만족스럽게 마친 김연아의 눈물,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정말 흘렸는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눈물, 그리고 내가 흘렸던 모든 눈물이다. 각각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그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입대 전까지 난 별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펑펑 울었던 기억 중 아직 까지도 초등학교 6학년의 그 날이 기억날 뿐 그 이후로는 눈물 한번 쏟지 않고 8년을 보냈다. (사실 오프 더 레코드로 정말 많이 울었던 적이 있다. 잊을 수 없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문제는 그와 같이 감정도 메말라 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여자애한테 로봇 같단 말도 들어봤다. 그렇게 사라졌던 감정은 여자친구와 함께 돌아온다. 그 얘긴 다음에 하기로 하자. 내 눈물샘을 다시 활성화 시킨 것은 결국 그녀는 아니었으니까.

이런 내 성향이 생긴 것을 어느 정도는 부모님 탓을 하고 싶다. 두 분 모두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가 울먹거리는 것은 한 번 본 적 있지만 나 때문은 아니었고 그땐 우리 가족 모두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처음 유학 떠나는 날도 훈련소 입소하는 날도 웃는 얼굴로 헤어졌었다. 그러니 내가 영향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랬던 나에게 감성적인 면을 키워준 것은 여자친구였다. 결국 사랑을 해야 성숙해지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되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날 선 고슴도치 같았던 나의 겉모습을 녹여 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성향이 있고 가끔은 그것을 위해 남을 공격하기도 한다. 쉽게 망가지지 않는 사람인데 그녀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울어도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슬픔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인지 아니면 내가 표현에 서툴러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군대에 가서 언제라도 눈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부모님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건 만 고작 8주 정도 되는 훈련소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군대의 특수성보다는 그냥 내가 철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엄마 아빠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더 자세히 이해한 것이 계기일 것 같다.

그 후로는 정말 매일 후회가 쌓인다. 매일 아침을 먹고 아빠 출근 길을 배웅하면서도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하는 아들이 되어버린 것이 제일 후회된다. 부모님께 한 걸음 다가가기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바보같이 살아오지 않았을 텐데……

역시 나는 아직도 멀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감정이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남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부모님의 인생의 무게도 알아 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