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2.

설곽 방문

대학로에서 점심약속이 있었다. 그 전에도 대학로를 안 갔던 것은 아닌데 보통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가서 밥만 먹거나 술만 마셨지 세월을 곱씹으며 그 거리를 거닌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미화된 기억 속에 밝고 찬란한 대학로는 거기에 없었다. 큰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대로변을 장식했고 나와 고교시절을 함께한 장소들은 이제 나의 추억 속에서만 그 화려했던 시절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혜화역 4번출구를 걸어 나오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 시절 4번출구를 걸어 올라오면서 밖을 바라보면 건너편 건물 3~4층 즈음에 항상 보이던 그 비디오 방의 영화 포스터들이 없었다. 그 바로 옆 건물의 하겐다즈는 1층의 에뛰드 하우스와 그 위의 공차에 밀려 사라져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생겼던 해산물 뷔페 1세대인 마리스꼬는 그 자취를 감췄고 그 옆 건물의 미스터 피자는 포메인이 되어있었다. 꽤 자주 갔던 오무토 토마토는 스타벅스에 먹혔고 우리 준모의 야심찬 필름 회식 장소였던 돼지불고기집은 새삥 간판을 단 정나미 없는 등갈비집이 되어 있었다. 친구 생일선물을 샀던 클루도 첫 커플링을 샀던 OST도 대학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유명한 '뜰'도 '아이엠'도 없었다. 아무리 설빙을 필두로 한 빙수가 대 히트를 쳤다지만 나의 고등학교 시절 빙수를 책임졌던 토스트 무한(에서 1회로 바뀐)리필 캔모아도 맨날 아이스크림 다 먹고 얼음만 남았던 아이스베리도 세월에 밀려 장사를 접었다.
놀부 부대찌개는 그대로다. 바깥을 새로 칠하긴 했지만

계절학교 통신강좌를 내러 우체국까지 내려올 때 마다 점심을 해결했던 금문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대학로의 휘발성이 아련하게 와 닿았다. 핫플레이스의 대세가 강남역, 압구정에서 가로수길로, 신촌에서 홍대로, 아예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동안 대학로는 포지셔닝을 유지하며 소극장과 마로니에 공원, 젊음이 살아있는 공간을 유지해 왔는데 7년이라는 시간 앞에 그 디테일을 간직하길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나보다. 하긴 고등학교 선배들이 혜화 고가도로가 사라진 것에 느꼈을 충격도 비슷했을 것 같다.

이렇게 감상에 잠기다보니 어쩌면 대학로도 매년 새단장을 하며 내가 오길 기다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로는 항상 그 자리에 서있었겠지 혹시 걷다가 지친 내가 볼 수 있도록. 변화가 쌓여 새로움이 아닌 세월을 느끼고 트렌드 보다는 아련한 추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소홀함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깝다. 결국 인간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해외에 주로 있는 삶을 살다보니 나 한번 보자고 연락하는 사람 챙기기조차 벅찬 나의 모습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작은 회의감도 스쳐 지나갔다.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 급식이 아닌 밥을 먹는 다는 사실에 어디서 뭘 먹든 즐겁게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젠 별로 그렇지도 않다. 단순히 루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것이 기뻤던 나는 어느새 커서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를 열심히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설곽축제가 오늘 내일인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휴가 계획 단계에서 고려되었던 일정이기에. 전면 백지화 되었던 계획이 후에 생긴 대학로 점심약속으로 인해 간소화되어 부활했고 설곽은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궁금해서 그 언덕을 올랐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운동장을 잡아 먹은 새로운 강의동과 새로운 기숙사.

옛날엔 이런 포스터와 함께 팜플렛이 나오면 학생회장 같은 사람이 바위에 공식적으로 간단한 초대의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그런 것이 없다는 생각이 스치며 뭔가 안타까웠다. 심지어 우리소리 게시판에도 올해는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사실 설곽축제는 그들만의 축제의 느낌이 강하다. 외부에서 수 많은 동네 고딩들이 놀러오는 것도 아니고 각자 준비한 것들 서로를 위해 보여주는 그런 자리. 아는 친구들이 공연하니까 재밌지 남이 보기엔 그저 그런 공연들. 돌이켜보면 우리소리가 그 와중에 압도적으로 멋진 공연을 매해 선사해왔다.

바이오스피어는 해부 실황 대신 해부 결과물만 전시해놨다. 이 생물실험실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우리 땐 바이오가 술 공급을 담당했는데 그 것 조차 없었다.

엠오는 엠오 보드게임방에서 카지노로 바뀐지가 꽤 되었다. 그게 내 동생이 설곽에 있을 당시가 시작인데 멍청하게도 명색이 카지논데 세븐카드스터드를 하고 있어서 홀덤 룰을 알려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도 계속 홀덤이 메인인 느낌이다. 역시 카드게임은 홀덤.
예상대로 엠오가 꾸며놓은 교실에 들어가도 딱히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구경 좀 하다가 셈사랑 한 권 사서 왔다. 잠시 이야기하던 학생이 이번에 제본비가 많이 들었다고 징징댔는데 원래 엠오 축제 돌아가는게 학교 지원금으로 셈사랑 뽑고 과자 좀 사놓고 책 판 값으로 회식가는 것인 줄 다 아는 내 앞에서 무슨ㅋㅋㅋ

문은 꼭 닫아야 한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서클별 포스터 및 장식이었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말을 아끼고 싶지만 학교에 여학생 숫자와 비율이 낮다보니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퀄리티 하락이라고 생각한다. 천년제 첫 날 아침 포스터와 홍보 문구를 붙이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 쟁탈전을 벌였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서클이 어느 자리를 매년 차지해 왔다더라 같은) 이젠 서클마다 대충 두 세 개 만들어서 사이 좋게 나눠 붙이는 느낌이랄까? 자꾸 뭔가 바이오 저격 같은데 여자친구의 출신 서클이다보니 관심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학과동 옥상이 좌우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플라네타리움 쪽 문이 잠겨있어서 반대쪽으로 나갔는데 가운데 둥근 지붕을 사이에 두고 건너갈 수가 없게 되어있더라. 안타깝게도 천체망원경에게는 인사를 못했다. 그럼 블랙홀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긴 3층 강당 앞을 늘 동전, 두더지, 혹은 뭔가 삽질 같은 게임으로 장식했던 유레카와 아즐가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만 찍고 간다. 다행히 눈이 온 뒤라 하늘이 맑았다. 아래 사진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걸어갔던 나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
문득 떠오르는 이 순간의 음악.
미생에서 옥상이라는 공간이 힐링의 메타포로 쓰인 것은 내가 남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과 이 수 많은 빌딩 속 작은 존재라는 사실의 모순적 공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주는 위로와 격려. 이 차가운 도시 속에 얼마 남지 않은 가이아의 대지를 옥상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학과동 한 번 들렸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홍기택 선생님과 이승우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드렸다.

이 친구는 여전히 이 곳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이 터널은 그대로다.

이 식당 역시 그대로이다.

건물이 두 개나 더 생겨도 실내 탁구장에 줄 자리는 없다.

내 이름 안녕

설곽에서 과거와 온전히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각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딱히 반겨주는 이 없고 아는 선생님들도 거의 없지만, 내꺼인듯 내꺼아닌 느낌이 매년 짙어지는 설곽이지만 교정을 거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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