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31.

And 다이닝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엔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었고 그냥 맛있는 저녁식사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었다. 그래서 미리 예약한 곳이 한남동에 있는 And 다이닝이다. 장진모 쉐프랑 어시 3명(추정치)이 좁아보이는 주방 안에서 뚝딱뚝딱 선보이는 요리들이 궁금했고 이전에 뉴욕에서 갔었던 Atera와 비슷한 느낌의 식당인 것 같아 더욱 기대하고 갔다.

 

가는 길에 있는 호텔 크리스마스 장식

리움 앞 부자피자 건물
부자피자는 맛있지만 접근성을 무릅쓰고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움은 마지막 방문 이후로 특별전이 안바뀌어서 이번 귀국길엔 패스!

리움 골목 건너편 건물

And는 장인들이 모여 한 지붕 아래 이루고 있는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내가 방문한 것이 그 중 다이닝이고 다이닝 마지막엔 이곳의 커피도 맛 볼 수 있었다.
네이버맵에서 알렉스더커피로 검색하면 나온다.


정면 샷

평면도로 보니까 다이닝 진짜 콩알만하다.

내 자리에서 시야

셋팅 - 저 봉투 안에 오늘의 메뉴가 들어있다

주방 문 왼쪽 벽
액자에 해놓은 핀셋 장식이 보인다

손님과 대화중인 분이 장진모 쉐프

까페에서 넘어오는 문
보시다시피 공간이 정말 좁다. 딱 8명이 앉을 수 있는 ㄱ자형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쉐프의 공연을 감상하는 모양새다. Atera도 오픈키친이었지만 이렇게 테이블 바로 앞이 조리대는 아니었다. 쉐프와 어시의 호흡과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예약시간보다 1시간 늦게온 어떤 커플 때문에 내가 디저트를 먹을 때 즈음부터는 정말 정신 하나도 없이 돌아가는 주방을 볼 수 있었다.

 첫 요리 준비중

아뮤즈 부쉬 - 오렌지를 넣은 고로케와 사과슬라이스로 감싼 육회
설명을 잘 안들어서 오렌지인줄도 모르고 먹었는데 분명 오렌지 말고 다른 것도 들어간듯한 맛인데 설명이 안된다. 육회는 역시 고소하고 달달한 사과랑 함께여서 식욕을 돋구는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진짜 열심히 만드신다. 허리가 걱정될 정도. 코스가 한 두개도 아니고



첫 코스는 푸아그라 요리
네모난 것은 푸아그라 테린이고 둥근 것은 푸아그라 가나슈라고 한다. 난 그냥 간덩이를 지칭하는게 푸아그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요리법이 다양하다. 가나슈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부드러웠다. 푸아그라크림 먹는 느낌. 그 옆에 붉은 채소는 구운 비트와 비트 피클인데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식재료라고 생각함. 노란 것은 망고 에멀전이고 석류와 겨자도 같이 올렸다.
신기하게도 이 전까지 푸아그라를 먹을 때 마다 한입만 먹고 나머지를 나에게 넘기곤 했던 여친이 이 디쉬는 다 비웠다. 그만큼 향과 맛이 강한 푸아그라를 잘 조리했다고 볼 수 있겠지. 전채요리 단계에서 너무 진한 푸아그라를 먹는 것보다 이렇게 좀 샐러드에 가깝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빵! 평범!

귀한 재료 조심조심 한땀한땀


두 번째 코스는 굴! 오이스터!
메뉴판을 받아봤을 때 당연히 생굴일 줄 알았으나 살짝 익힌 굴이었다. 우니 위에 굴을 얹고 그 위에 아브루가 캐비어를 얹었다. 옆에 소스를 뿌려주고 숟가락으로 떠 먹었다. 왜 이걸 애초에 숟가락 위에다가 만들어서 서빙하지 않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여 물어보았는데 그릇과 식기를 협찬하는 쪽에서 그정도 크기의 숟가락이 없었다고 한다. 풀샷에서 볼 수 있듯이 자칫 잘못 떠먹으면 다 무너짐...
참고로 아브루가 캐비어는 가짜 캐비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입 속에서 우니와 굴에 치여 자취를 감춘 듯한 느낌.


세 번째 코스는 머쉬룸!
송이버섯과 야채, 계란 반숙 그리고 아래에 트러플페이스트가 깔려있다. 계란을 터뜨려 버섯과 함께 먹는데 아래 깔려있던 트러플 오일의 향이 느껴져서 행복했다. 근데 계란이 꽤 커서 다 먹기엔 약간 느끼했다. 이런걸 먹으면서 느끼하다고 투덜대는건 약간 사치스러운 불만 같긴 하다. 홍콩 돌아와서 너무 바빠서 먹어보려 했던 화이트트러플라떼를 아직도 못먹어봤다. 내일 먹어야 할듯.


네 번째 코스는 새우!
새우, 애호박, 토마토, 순무 그리고 새우 비스크가 깔려있다. 스프가 새우 그 자체. 홍콩에 있는 spoon에서도 새우 젤리 + 새우 + 새우튀김이 나온 요리가 있었는데 새우는 이렇게 통일된 디쉬로 만드는 것이 대세인가보다. 새우 지름이 방울토마토급인 만큼 탱탱하고 맛있었다.



다섯번 째 코스는 스캘럽! 조개관자!
스캘럽 두개에 하나는 베이컨가루, 하나는 올리브가루를 뿌려줬다. 미니 양배추 귀엽다. 이건 뭐 사실 재료가 좋으니 맛있을 수 밖에 없는 기본에 충실한 요리였다. 베이컨보단 올리브가 마음에 들었다.


메인 요리 중 내가 선택한 오리!
오리는 항상 저렇게 잎 채소와 함께 나온다. 그릴에 구운 파와 헤이즐넛, 그리고 메이플시럽과 버본위스키를 넣어 만든 소스를 뿌려주었다. 난 오리 빠돌이이기 때문에 매우 즐겁게 먹었다. 소스가 달달해서 좋았고 가슴살임에도 매우 부드럽고 촉촉했다. 하지만 Atera에서 먹었던 오리는 못따라감. 다릿살도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메인 요리 중 여친님이 선택한 돼지!
돼지 삼겹살, 감자, 완두콩, 그리고 뭔가로 만든 칩이 같이 나왔다. 나는 맛만 봐서 어떤 소스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역시 돼지 부위 중에는 삼겹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우유빙수! 얼음 아래 민트향 소스가 깔려있다. 섞지말고 그냥 떠 드세요.


 클렌징 다음은 디저트! 디저트 역시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들어 준다. 이 사진은 늦게 온 커플을 위한 푸아그라 디쉬 제작중인 쉐프.


디저트 이름이 structure of fruits
스트링치즈처럼 생긴 화이트초콜릿, 각종 과일, 라즈베리 샤벳
마시쪙


마지막 디저트는 초콜렛과 카라멜
salted caramel 아이스크림은 원래 너무 달게 마련인데 여긴 그정도로 달지는 않았다. 맨 위의 초콜렛은 무슨 블랙과 화이트의 중간정도 되는 초콜릿이라는데 이 역시 적당히 달았다. 무조건 달게 달게 더 달게를 외치는 미국의 디저트를 더 이상 안 먹어도 되서 기쁘다.


마지막은 드립커피와 트러플초콜렛
참고로 초콜렛 좋아하는 분들은 미리 많이 먹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코코아나무 열매 없이 초콜렛을 만들 수 있게 되지 않는 이상 한 5년쯤 후 부터 초콜렛 가격이 확 오를 예정이다.

장인들의 공간인 and에 속해 있으면서 그 컨셉에 맞게 하나의 cuisine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다이닝을 선보이는 목표에 어울리는 식사였다. 고급 요리의 갑인 프렌치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이 재료, 저 재료를 써가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느낌?
동생을 통해 예약할 때는 몰랐는데 이브날과 크리스마스날은 평소와 다른 더 확장된 코스를 선보여주었다. (물론 평소보다 비쌌음) 덕분에 더 다양한 디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 디너만 있는 것으로 아는데 1월 6일까지 풀부킹이라고 한다. 여긴 쉐프님이 메뉴를 더 확확 바꿔나갈 계획이신 것 같아서 기대됨.

2014. 12. 22.

설곽 방문

대학로에서 점심약속이 있었다. 그 전에도 대학로를 안 갔던 것은 아닌데 보통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가서 밥만 먹거나 술만 마셨지 세월을 곱씹으며 그 거리를 거닌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미화된 기억 속에 밝고 찬란한 대학로는 거기에 없었다. 큰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대로변을 장식했고 나와 고교시절을 함께한 장소들은 이제 나의 추억 속에서만 그 화려했던 시절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혜화역 4번출구를 걸어 나오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 시절 4번출구를 걸어 올라오면서 밖을 바라보면 건너편 건물 3~4층 즈음에 항상 보이던 그 비디오 방의 영화 포스터들이 없었다. 그 바로 옆 건물의 하겐다즈는 1층의 에뛰드 하우스와 그 위의 공차에 밀려 사라져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생겼던 해산물 뷔페 1세대인 마리스꼬는 그 자취를 감췄고 그 옆 건물의 미스터 피자는 포메인이 되어있었다. 꽤 자주 갔던 오무토 토마토는 스타벅스에 먹혔고 우리 준모의 야심찬 필름 회식 장소였던 돼지불고기집은 새삥 간판을 단 정나미 없는 등갈비집이 되어 있었다. 친구 생일선물을 샀던 클루도 첫 커플링을 샀던 OST도 대학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유명한 '뜰'도 '아이엠'도 없었다. 아무리 설빙을 필두로 한 빙수가 대 히트를 쳤다지만 나의 고등학교 시절 빙수를 책임졌던 토스트 무한(에서 1회로 바뀐)리필 캔모아도 맨날 아이스크림 다 먹고 얼음만 남았던 아이스베리도 세월에 밀려 장사를 접었다.
놀부 부대찌개는 그대로다. 바깥을 새로 칠하긴 했지만

계절학교 통신강좌를 내러 우체국까지 내려올 때 마다 점심을 해결했던 금문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대학로의 휘발성이 아련하게 와 닿았다. 핫플레이스의 대세가 강남역, 압구정에서 가로수길로, 신촌에서 홍대로, 아예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동안 대학로는 포지셔닝을 유지하며 소극장과 마로니에 공원, 젊음이 살아있는 공간을 유지해 왔는데 7년이라는 시간 앞에 그 디테일을 간직하길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나보다. 하긴 고등학교 선배들이 혜화 고가도로가 사라진 것에 느꼈을 충격도 비슷했을 것 같다.

이렇게 감상에 잠기다보니 어쩌면 대학로도 매년 새단장을 하며 내가 오길 기다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로는 항상 그 자리에 서있었겠지 혹시 걷다가 지친 내가 볼 수 있도록. 변화가 쌓여 새로움이 아닌 세월을 느끼고 트렌드 보다는 아련한 추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소홀함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깝다. 결국 인간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해외에 주로 있는 삶을 살다보니 나 한번 보자고 연락하는 사람 챙기기조차 벅찬 나의 모습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작은 회의감도 스쳐 지나갔다.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 급식이 아닌 밥을 먹는 다는 사실에 어디서 뭘 먹든 즐겁게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젠 별로 그렇지도 않다. 단순히 루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것이 기뻤던 나는 어느새 커서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를 열심히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설곽축제가 오늘 내일인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휴가 계획 단계에서 고려되었던 일정이기에. 전면 백지화 되었던 계획이 후에 생긴 대학로 점심약속으로 인해 간소화되어 부활했고 설곽은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궁금해서 그 언덕을 올랐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운동장을 잡아 먹은 새로운 강의동과 새로운 기숙사.

옛날엔 이런 포스터와 함께 팜플렛이 나오면 학생회장 같은 사람이 바위에 공식적으로 간단한 초대의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그런 것이 없다는 생각이 스치며 뭔가 안타까웠다. 심지어 우리소리 게시판에도 올해는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사실 설곽축제는 그들만의 축제의 느낌이 강하다. 외부에서 수 많은 동네 고딩들이 놀러오는 것도 아니고 각자 준비한 것들 서로를 위해 보여주는 그런 자리. 아는 친구들이 공연하니까 재밌지 남이 보기엔 그저 그런 공연들. 돌이켜보면 우리소리가 그 와중에 압도적으로 멋진 공연을 매해 선사해왔다.

바이오스피어는 해부 실황 대신 해부 결과물만 전시해놨다. 이 생물실험실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우리 땐 바이오가 술 공급을 담당했는데 그 것 조차 없었다.

엠오는 엠오 보드게임방에서 카지노로 바뀐지가 꽤 되었다. 그게 내 동생이 설곽에 있을 당시가 시작인데 멍청하게도 명색이 카지논데 세븐카드스터드를 하고 있어서 홀덤 룰을 알려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도 계속 홀덤이 메인인 느낌이다. 역시 카드게임은 홀덤.
예상대로 엠오가 꾸며놓은 교실에 들어가도 딱히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구경 좀 하다가 셈사랑 한 권 사서 왔다. 잠시 이야기하던 학생이 이번에 제본비가 많이 들었다고 징징댔는데 원래 엠오 축제 돌아가는게 학교 지원금으로 셈사랑 뽑고 과자 좀 사놓고 책 판 값으로 회식가는 것인 줄 다 아는 내 앞에서 무슨ㅋㅋㅋ

문은 꼭 닫아야 한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서클별 포스터 및 장식이었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말을 아끼고 싶지만 학교에 여학생 숫자와 비율이 낮다보니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퀄리티 하락이라고 생각한다. 천년제 첫 날 아침 포스터와 홍보 문구를 붙이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 쟁탈전을 벌였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서클이 어느 자리를 매년 차지해 왔다더라 같은) 이젠 서클마다 대충 두 세 개 만들어서 사이 좋게 나눠 붙이는 느낌이랄까? 자꾸 뭔가 바이오 저격 같은데 여자친구의 출신 서클이다보니 관심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학과동 옥상이 좌우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플라네타리움 쪽 문이 잠겨있어서 반대쪽으로 나갔는데 가운데 둥근 지붕을 사이에 두고 건너갈 수가 없게 되어있더라. 안타깝게도 천체망원경에게는 인사를 못했다. 그럼 블랙홀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긴 3층 강당 앞을 늘 동전, 두더지, 혹은 뭔가 삽질 같은 게임으로 장식했던 유레카와 아즐가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만 찍고 간다. 다행히 눈이 온 뒤라 하늘이 맑았다. 아래 사진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걸어갔던 나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
문득 떠오르는 이 순간의 음악.
미생에서 옥상이라는 공간이 힐링의 메타포로 쓰인 것은 내가 남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과 이 수 많은 빌딩 속 작은 존재라는 사실의 모순적 공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주는 위로와 격려. 이 차가운 도시 속에 얼마 남지 않은 가이아의 대지를 옥상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학과동 한 번 들렸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홍기택 선생님과 이승우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드렸다.

이 친구는 여전히 이 곳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이 터널은 그대로다.

이 식당 역시 그대로이다.

건물이 두 개나 더 생겨도 실내 탁구장에 줄 자리는 없다.

내 이름 안녕

설곽에서 과거와 온전히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각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딱히 반겨주는 이 없고 아는 선생님들도 거의 없지만, 내꺼인듯 내꺼아닌 느낌이 매년 짙어지는 설곽이지만 교정을 거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