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표현을 빌려 감히 표현하건데 지속적으로 심도있는 지랄중이신 한 선배에게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아 이젠 거의 잊혀진 나의 지랄에 대한 기록.
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 대상이 합법적이고 정신의학적으로 이상하지만 않다면. 난 꽤나 오랜 시간을 살면서 딱히 무언가에 빠져본적이 없었다. (수학 제외) 뭐 시대에 따라 좋아하는 연예인, 즐겨보는 드라마, 요즘 하는 게임 정도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ㅁㅁ의 팬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던 적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잠시 빠져있던 대상은 다름아닌 아이유였다. 그래서 이 글은 아이유 헌정 글 - 그 미화된 기억.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수지인 사람은 많겠지만 그들 중 자신을 수지 팬이라고 지칭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팬이 되는 첫 단계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핵심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좋은날 뮤직비디오였다. 어떻게 뮤직비디오 하나에 팬이 되어버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나는 환경 탓을 할 것이다. 그 첫 만남은 육군훈련소 정훈교육 쉬는 시간이었으니까.
내가 2010년 11월 29일에 입대했고 좋은날은 아마 12월 9일에 나왔을 것이다. 당시 좋은날의 인기는 사회에 있던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설명은 안하지만 어쨌든 그 영향은 군대에 퍼져 배출될 때까지 같은 뮤비를 3번정도 보여준 것 같다. 마지막은 연대장 교육 쉬는 시간이었는데 그 때쯤 되니 3단고음 떼창을 볼 수 있었다. 훈련소에서 나는 아이유 팬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면 분명 아이유에게 빠져버렸던 것은 맞지만 사실 그 이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이유 노래들과 라이브 공연한 노래들 찾아듣고 뉴스 가끔 찾아보는 정도? 꽤나 오랫동안 그저 좋아하는 가수가 아이유인 삶을 살았다. 그 후 본격적인 팬심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하반기 노트북을 반입한 이후였다.
우선 드림하이와 영웅호걸을 모조리 받아서 정주행했다. 영웅호걸은 좋은날이 나오기 전부터 시작해서 연일 상한가를 치는 기간에 방송을 했기 때문에 아이유 팬에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치솟는 인기를 증명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던 느낌이다. 드림하이는 뚱보 분장으로 시작해서 꽃등심 사건으로 끝난 뭔가 안타깝지만 그래도 내 가수가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내가 입대한지 정확히 1년 되는 날 너랑나가 포함된 전설의 앨범 라스트 판타지가 나온다. 이 앨범이 상당한 팬심의 기폭제였는데 버릴 노래가 없었고 뮤직비디오도 정말 잘 찍었다. 좋은날 부르던 때의 메이크업과 형광+원색 의상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던 나는 드디어 로엔이 제대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 당시엔 매주 일요일 복귀하면 그 주 금, 토, 일에 있었던 음악방송 무대를 찾아보며 한 주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유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디씨 아이유갤러리에도 들어가기 시작했었다. 공식 팬까페는 초중딩들이 너무 많고 어짜피 공개방송이나 팬 사인회나 어떤 이벤트가 있어도 가기 매우 힘든 신분이었기 때문에 딱히 갈 이유가 없었다. 디씨 인물갤을 좀 해보면 알겠지만 갤주의 생일을 특이한 방식으로 기념하는데 아이유의 생일이 5월 16일이라 매일 새벽 5시 16분에 봉시찬양 한다고 글 리젠이 매우 빨랐다. 6시에 배럭 앞에서 첫 집합이 있었던 나는 매일 아침 봉갤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참 뭐하는 인간들이었는지 궁금하다. 디씨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의지와 노력이 참 가상한 것 같다.
또 디씨는 갤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네임드들을 매우 빨아주는데 별의 별 신기한 사건들과 썰들이 많았다. 가장 미친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대 생물관련학과 대학원생이었다. 아이유는 신동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해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고 곧 완성될 음식을 먹을 청취자를 방송국으로 초대해서 시식을 하게 해주는 즉석 이벤트를 열었다. 그 인간은 생각할 틈도 없이 택시에 타고 방송국에 전화해 30분 후 여의도에서 주먹밥을 얻어먹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저 라디오가 아마 새벽 2시에 끝나는 거였을텐데 그 시간까지 관악에 있었던 것도 불쌍하고 무슨 생각으로 이미 택시에 올라탄 뒤 제발 뽑히길 바라며 전화를 걸었는지. 이 인간은 이후 아이유 부산단콘에서 경호원의 제지를 받기 전 무대 위의 아이유에게 꽃다발을 갖다주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유가 저한테 주먹밥 얻어먹으신 분이라며 기억해줬다.
아이유의 장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로 핫 한 가수들 중 한명이어서 매일 같이 공연이 있거나 언론 노출이 있었다. 2012년 상반기에는 일본 진출을 시도하며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봉갤의 직찍러들은 아이유가 월요일 새벽 6시에 입국을 해도 공항에서 대기를 타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성실함을 보여줬다.
이 팬심의 피크는 같은 해 6월에 관람한 아이유의 첫 단독콘서트의 첫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터져버렸는데 콘서트의 힘에 압도되어 완전 빠돌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 기억은 아직도 꽤 생생한데 미아를 부를 때 박자를 놓쳐 후렴구 3마디를 날려버린 것도 떠오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삼단고음 라이브, 그리고 게스트 이적이 직접 반주하며 부른 하늘을 달리다(?!) 등 라이브에 취할 수 있는 가수를 고른 것이 행복했다.
왜 디씨에서 보던 진성 봉갤러들은 모든 지역 모든 회차를 다 예매해서 보러 다니는지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그정도는 아니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밖에서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긴데 팬들은 이런 것을 은근히 따진다.
같은 해 7월 3일엔 원래 미국 독립기념일을 우리도 기념해서 외박을 나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팬사인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말도 안되게 당직이 잡혀버려서 안타까웠던 기억도 있다. 아이유 댄싱팀 애들 이름도 몇 명 알았었는데 이젠 지율이라는 애 한 명만 기억난다. 내 큰엄마가 아이유의 학교인 동덕여고 선생님이셔서 Real(좋은날 수록 앨범)에 내 이름으로 사인 받아 주셨다.
그렇게 아이유의 팬인 채로 전역을 했는데 3주간 정신없이 살다가 출국을 하고 더 정신없는 복학 첫 학기를 보낸 뒤에 돌아보니 그새 팬심은 다 죽고 앨범 3장만 남아있었다. 그 학기 중에 아이유-은혁 병문안 사건도 터졌었는데 그 상대가 은혁인건 마음에 안들었지만 별 충격을 받지도 않았고 오히려 연애도 해보고 상처도 받아야 좋은 음악이 나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현실로 킥 당했고 이후로는 그냥 응원하는 가수이자 추억의 한 켠으로 남아버렸다. 그 이후로도 계속 좋은 앨범 내며 명실공히 블루칩 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최고다 이순신이랑 장근석이랑 나온 드라마 할 때 쯤엔 그 많던 팬심은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못 보겠더라.
아이유 팬질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팬과 가수가 진심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유 멘탈 강한거야 승승장구 아이유편만 봐도 알 수 있는데 힘들게 커서 그런지 팬들을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군입대하는 팬 한 명 챙긴다고 둘이서 성시경 콘서트를 보러 간 이야기는 들어본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짧다면 짧은 팬질이었는데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다. 언젠가 만날 일이 생기면 20대 초반 나의 ost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