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7.

Bo Innovation

보너스 받은 기념, 설을 타지에서 보낸 기념으로 비싸고 맛있는 것을 한 끼 먹었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곳들 중 혼자 갈만한 곳이 사실 여기밖에 없었다. 안 가본 곳들 중 가장 궁금하기도 했고. 설날에서 발렌타인으로 이어지는 성수기가 끝난 직후라 예약이 쉬웠고 자리도 여유로워서 6자리 있는 셰프 테이블에 손님은 3명밖에 없었다. 메뉴가 자주 안바뀌기로 유명한 곳이라 설 특선 메뉴를 제공할 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Bo innovation은 꽤나 오래된 식당이고 Alvin Leung이라는 셰프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X-treme Chinese cuisine 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중국 요리를 재해석해서 분자요리 기법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내놓는다. 메뉴는 자주 안바뀐다고 하는데 가격은 꾸준히 오른다.

돌판이 기본 세팅이고 그 주위의 식기를 매번 바꿔준다. 이 앞으로는 작지만 촘촘한 오픈키친이 있고 4~5명의 요리사가 바쁘게 계속 무언가를 만든다. 오너셰프인 앨빈 렁도 있었다.

식전 아뮤즈부쉬로 이 계란빵을 준다. 광동어로 까이단자이였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데 생각해보니 오리지널은 한번도 안먹어봤다. 초콜렛이나 팥을 넣어 달콤하게 만든 것은 먹어봤는데 진짜 길거리에서는 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파랑 중국햄을 넣어서 짭짤하게 만들었다. 식전에 단거 먹을 순 없으니.

첫 코스를 주기에 앞서 재료를 소개한다. 원숭이의 해를 맞아 Monkey 47이라는 Gin을 주재료로 한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저 술로 만든 진토닉에 유자즙을 섞어 만든 요리이다.

Nitro - monkey 47 gin, yuzu
그렇게 만든 칵테일을 휘핑크림 넣는 통에 넣고 질소를 섞어 거품을 짠다. 그걸 저렇게 액체질소에 담궈서 급속냉동시킨 요리이다. 잘 얼려서 옆에 보이는 접시에 놓아주는데 워낙 차가워서 혀에 붙어버리기 때문에 물을 입에 조금 머금고 먹으라고 설명해준다. 순식간에 녹고 거품이다보니 금방 사라진다. 진토닉의 맛과 유자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나로선 진짜 진토닉 한잔 줬으면 더 고마웠겠지만 이런 분자요리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퍼포먼스가 재밌긴 했다.

Caviar - smoked quail egg, crispy taro nest
이 메뉴는 평소에도 있던 메뉴였다. 토란으로 만든 새 둥지에 훈제 메추리알과 케비어를 올렸다. 이 나무모양 접시(혹은 받침대)는 이 메뉴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케비어의 맛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짭짤하면서 독특한 뭔가 설명하기 힘든 맛이다. 반숙 메추리알과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역시 계란은 소금을 뿌려 먹어야 한다.

"Fat Choy Ho Si Dai Lee"
쿵헤이 팟초이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뜻인데 이 요리 제목은 요리 재료랑 비슷한 소리가 나는 그런 덕담 중 하나라고 한다. 굴, 우설, 연어알, 검정 이끼에 사천식 소스를 뿌렸는데 어떤 재료가 어떤 발음이 나는지 모르니 그냥 설명만 듣고 그런가보다 했다. 맛은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재료에서 예상 가능한 맛이 났던 것 같다.

"Lo Hei" - cured ocean trout
염장 숭어가 들어간 샐러드이다. 생선은 아래 깔려있고 위엔 사과, 피망, 돼지껍데기 튀김 등 각종 재료가 올라가있다. 소스는 자두소스 였는데 뭔가 다른 재료도 많이 들어간 맛이었다.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숭어를 제외하곤 아삭거리는 식감이 있는 재료들 뿐이다. 달달한 소스랑 잘 어울렸다. 샐러드에 흔히 쓰이지 않는 야채나 과일만 작정하고 사용한 메뉴라고 한다.

다음 메뉴에 앞서 이 새우 기름을 보여줬다. 작은 새우들을 엄청나게 모아서 액기스만 뽑아낸 기름이라고 한다. 향을 먼저 맡게 해줬다.

Umami - toro, house made oil, vermicelli, wok air powder
이름이 우마미인 만큼 대놓고 감칠맛을 버무린 메뉴이다. 참치 뱃살은 살짝 훈제했고 가운데 국수는 새우 기름에 버무린 것이고 그 위에 국수 튀김 같은 것은 뭔지 기억이 안난다. 중국 요리할 때 쓰이는 웍에 뭔가를 태워서 그 가루를 뿌린 것이 wok air powder 라는데 흔히 말하는 불맛(혹은 향)을 요리에 강제로 입히기 위해 섞은 것 같다.

다음 요리를 위해 나온 귀여운 숫가락. 메뉴 이름이 베이비 푸드인 만큼 이런 유아용 스푼으로 떠 먹어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Baby Food - black truffle, foi gras, daikon
병을 특별히 제작했는지 뚜껑에 요리 설명이 써있고 사이드에는 보보라고 식당 이름까지 써놨다. 나름 시그너쳐라고 하는데 좀 별로였다. 평상시 메뉴와 다른 재료들이 들어갔는데 평소엔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푸아그라랑 다른 재료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푸아그라 특유의 향이 너무 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Molecular - cha siu bao
중국의 대표적인 딤섬 중 하나인 챠슈바오의 분자요리식 해석이다. 저 탱글탱글한 계란 노른자같은 놈을 먹으면 탁 터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져나오는데 딱 챠슈바오 맛이다. 챠슈바오는 생긴 것은 찐빵 같은데 안에 돼지고기바베큐가 들어있는 딤섬인데 실제로 고기가 들어있진 않지만 맛은 똑같다. 좀 작아서 아쉬웠다.

중간에 Fortune on the other hand 라는 디쉬가 있었는데 사진을 못찍었다. 돼지 족발, 엄청 유명한 어떤 식초, 그리고 그 식초에 오래 담궈둔 계란 노른자 요리였다. 계란이 식초에서 향만 빨아들였는지 엄청 신 맛은 아니었다. 

Forever Prosperous - wild north pacific black cod, lotus
은대구 구이와 매쉬드연근(?), 연근 튀김이다. 매쉬포테이토 만들듯이 연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작하게 깔린 것도 연근을 우려낸 국물이다. 뭐 유명한 레스토랑 답게 정말 완벽하게 구워냈다. 내부까지 촘촘하게 익었는데 딱 익자마자 멈춘 느낌. 그만큼 부드럽고 탱글거린다. 으깬 연근이 참 맛있었다. 이것도 버터빨이려나. 뭔가 간만에 평범한 요리가 나온 것 같은 코스였다.

Lobster - black truffle, 'Bo' chilli sauce, new year rice cake
랍스터 꼬릿살과 컬리플라워, 컬리플라워 소스 그리고 베이스로 특제 매운 소스가 깔려있다. 설 메뉴엔 설 기념 떡이 추가된 것 같다. 트러플은 뭔가 구색맞추기로 깎아 넣은 느낌이었다. 향이 아주 강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세 조각을 그냥 한번에 먹었다. 매운 소스에 떡 하면 생각나는게 떡볶이인데 얼마전 셰프 팀이 한국에 음식 탐방 하러 가서 먹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매운 소스는 원래 쓰던거라 특별히 떡볶이에 영감을 받은 것 까진 아니라고 했다. 한국 시장들이랑 길거리 음식 위주로 먹었다던데 가끔 그렇게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가서 공부를 한단다. 

접시가 이렇게 용 받침대에 나온다. 황금색 용이라니 중국인들이 좋아할 수 밖에.

그 다음 메뉴를 위해 나온 귀주 마오타이와 hawthorn berry 말린 것이다. 한국이름은 없다. 그냥 호손베리 혹은 호돈베리라고 불린다. 중국 몇 대 명주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술이 마오타이인데 이걸 베이스로 입가심 할 수 있는 칵테일을 내준다. 그냥 한 샷 주면 안되냐고 물어봤는데 거절당했다.

Mao Tai - hawthorn berry, lemon grass, passionfruit
저 독한 술은 아주 조금 들어갔는지 알콜 느낌은 거의 안났고 상큼 돋는 다른 재료들이 입가심 시켜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보통 서양 음식점 가면 레몬 같이 새콤한 재료로 만든 샤베트를 주는데 이걸 얼려서 샤베트로 만들어도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용기가 이렇게 특이하게 생겼는데 저 흰 주둥이에 입을 대고 옆에 손잡이를 잡고 천장을 쳐다보듯이 들이키면 된다. 

다음 요리에 쓰인 9년 묵은 쌀인데 이태리에서 생산하는 리조또용 유명한 쌀인가보다. 그걸 9년이나 묵혔다니. 9년 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기도 전이다.

Abalone - yellow chicken stock
오직 닭 밖에 안들어간 스톡에 쌀을 익혀서 만든 리조또 느낌의 요리이다. 전복에 닭이 잘 어울린다면서 닭 지방과 육수를 듬뿍 머금은 쌀과 전복이 얼마나 잘 어울리나 느껴보란다. 전복은 우리나라 삼계탕의 단골 재료가 아닌가. 전복이 들어간 닭죽 느낌이었다. 물론 그보다 겉은 훨씬 탱글탱글하고 씹으면 쫀득한 쌀로 만들어졌다는 차이는 있다. 당연히 맛있는 요리이긴 한데 깍두기가 그리웠다.
Suckling pig - iberico, lettuce wrap
광동식 음식의 대표적인 돼지요리를 재해석한 디쉬다. 이걸 원래 메인인 소고기 요리로 바꿔달라고 할까 말까 가기 전부터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셰프가 고민해서 만든 코스일텐데 주는대로 먹기로 했다. 그 소고기 요리는 이 식당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 나중에 점심으로 방문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익힌 뒤 껍질만 따로 구워서 올렸다. 앞의 소스는 고추장이 들어간 특제 소스라고 한다. 고추장은 한국에서 공수해온다고 한다. 근데 공수한다기 보다는 이미 수입된 제품을 그냥 사다 쓸 것 같다.

뒤쪽엔 양배추 쌈이 준비되어 있다. 다른 부위의 돼지고기와 이베리코 햄이 곁들여져 있다. 햄의 짭짤함으로 간을 한 요리 같은데 뭔가 부족해서 저 앞의 고추장 베이스 소스를 찍어먹었다. 둘 다 맛은 평범했다. 사실 딱 보기에도 특별한 맛이 날 것 같진 않게 생겼다. 

Candy Box - red date, coffee, sugar candy, nuts
두 번째 디저트. 첫 번째는 중국식 푸딩이었는데 원래 별로 안좋아해서 맛만 봤다. 이 디저트는 위엔 각종 달다구리들과 해바라기씨가 있고 아래엔 대추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 거품이 깔려있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 + 커피 조합이 생각나는 맛이었는데 위에 있는 놈들이 단맛과 식감을 모두 책임져줘서 좋았다. 원래 건강 따윈 생각하지 않고 먹는게 중국요리인 만큼 건강한 느낌이 드는 과일이 들어간 디저트 따윈 없었다. 

마지막 쁘띠푸르로 8가지 재료로 만든 차와 그 8가지 재료로 만든 간식이 나왔다. 저 차는 정말 맛있었다. 8가지를 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달달하면서 오묘한 맛이 난다. 

2시간 좀 넘게 걸린 긴 식사였다. 중간에 살짝 딜레이가 있었는데 앨빈이 뒷 주방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안 나온 것으로 보아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다. 앨빈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것 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의외로 스텝들 대부분이 영어를 잘 못한다. 전화받는 예약 담당 직원이 제일 잘하는 느낌. 

이 포스팅은 귀찮아서 안하고 있었는데 쿡가대표에 앨빈과 그의 셰프들이 나온 것을 보고 부랴부랴 정리하게 되었다. 거기 나온 4명과 앨빈이 거의 항상 오픈 키친에 상주하면서 만들고 확인하고 그런다. 데빌이라는 선그라스 낀 친구는 실제로 주방에서도 계속 선그라스를 끼고 있다. 누군가 선물한 것 같은 그를 닮은 작은 피규어가 주방 한켠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이야기를 더 했으면 쿡가대표 팀이 다녀간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텐데. 원래 냉장고를 부탁해를 거의 안봐서 쿡가대표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냉부는 뭔가 요리보다 토크가 더 재밌는 프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근데 쿡가대표에 앨빈 렁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청했다. 심사위원들도 엄청 짱짱하게 섭외했는데 otto mezzo의 봄바나 쉐프랑 amber의 에케부스, 팀호완을 만든 막콰이푸이라니. 홍콩 레스토랑 계의 드림팀이 따로 없다. 홍콩와서 그냥 놀다간게 아니었다. 한국 셰프팀이 줄줄이 깨지고 있는데 뭐 사실 상대는 비슷한 경력을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쌓아온 사람들이니 그럴만 한 것 같다. 사실 요리 대결 이런건 별로 관심 없는데 이런식으로 세계를 다니면서 여러 유명 레스토랑들을 잘 섭외해내기 시작하면 쿡가대표도 계속 챙겨보게 되겠지. 북유럽 쪽 가줬으면 좋겠다.

쿡가대표를 보면 앨빈이 툭툭 던지는 농담들이 꽤 잘먹히는데 한 때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예능 경력이 어디 안가나보다. 뭔가 무뚝뚝한 표정을 계속 짓고 있고 말투도 차갑지만 주방에서만 그런가보다.